ㄱㄱ 하시죠
해봐도 되냐고 물었더니, 짧은 답이 돌아왔다.
올해 초부터 알게 된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모이는 해커하우스, Vyv House의 이벤트에 몇 차례 참가했다. 그러다 5월, Vyv House 깃허브 레포에 들어갔다.
guestbook이라는 파일이 있었다. 방명록까지 코드 저장소 안에 있었다.
PR을 보내도 되냐고 물었다.
“ㄱㄱ 하시죠.”
PR을 보냈다.
여기서는 방명록도 이렇게 쓰는 거였다.
몇 달 뒤에는 카드 한 장 없이 행사장에 들어갔다. 박찬님이 원피스 카드를 건넸고, 그 카드를 들고 다른 사람한테 갔다.
두 번 다 잘 알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대신 두 번 다 먼저 말했다. PR 보내도 되냐고, 리자몽까지 가보겠다고.
말하고 나니 누가 답을 했다.
0과 1
내가 말하는 0과 1은 해보기 전과 해본 뒤의 차이다.
카드를 몇 번 바꿨다고 수집가가 된 건 아니다. PR 하나 보냈다고 오픈소스를 다 알게 된 것도 아니다.
그래도 그다음부터는 내가 해본 걸 가지고 물을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왜 이 카드를 찾을까. 내가 보낸 PR은 어떻게 들어갈까.
잘 알게 됐다기보다, 궁금한 게 조금 더 분명해졌다.
그 한 번도 혼자 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 레포를 열어뒀고, 내 질문에 답해줬다. 행사장에서는 사람들이 카드를 보태줬다.
나는 해보고 싶다고 말했고, 그들은 해볼 수 있게 해줬다.
남의 작업에서 자기 할 일을 찾는 사람들
올해 OmO 같은 에이전트 하네스를 만드는 한국 개발자들이 주목받는 걸 가까이서 봤다.
쓰는 사람이 늘고 이름이 알려지면, 왜 그렇게 시간을 들였는지 설명하기 쉬워진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주목받기 전부터 쌓여온 모습이 있다.
누가 공개한 걸 가져와 돌려본다. 어디서 안 되는지 알려주고, 자기 문제에 맞게 고친다. 바꾼 걸 다시 내놓는다.
남이 만든 걸 쓰러 갔다가, 자기 할 일을 하나 더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늘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다. 경쟁도 피로도 있었고, 같이 쓰던 공간을 나누기도 했다. 그래도 좋은 게 나오면 가져다 썼다. 같은 방에서 일하기는 어려워도, 상대가 뭘 만들었는지는 계속 봤다.
행사장에서 옆 이야기를 듣던 셀러가 떠올랐다. 그분도 처음엔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피카츄를 한 마리 더 줬다.
남이 시작한 일에, 자기 카드를 한 장 얹었다.
셀러들은 내가 리자몽을 얻은 뒤에 나타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는 오늘 이런 도전을 해보겠다고 말만 했을 뿐인데, 그들은 카드를 보태줬다. 일이 안 끝났으니 보탤 자리가 있었다.
카드를 주는 것과 코드를 공개하는 게 같지는 않다. 그래도 남이 하는 걸 구경하다 손을 보태는 모습은 닮았다.
1에서 10으로, 100으로, 가끔은 1000으로 커지는 일에도 이런 과정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해본 일에 남의 경험이 더해지고, 다음에 해볼 일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1000이 돼야 처음의 1이 의미 있었던 건 아니다. 카드는 끝까지 취미로 남아도 되고, 고친 코드는 나 혼자 편하게 쓰는 데서 그쳐도 된다.
지금 여기
프론티어노트의 첫 노트는 thefutureisnowhere를 띄어 읽는 사람들 이야기였다.[1]
Nowhere. Now here.
카드 행사장에서 그 문장을 다시 떠올렸다.
잘 모르던 세계에서 사람들은 이미 모으고, 거래하고,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들어가 보니 그게 보였다. 그리고 들어간 뒤에 없던 일도 생겼다.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 카드를 보탰고, 다음 교환에 들고 갈 카드가 달라졌다.
그 한 칸은 혼자 띄운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한 칸을 띄우자, 어디에도 없던 카드가 지금 여기 생겼다.
재미있어서 해보고, 옆 사람이 하는 게 궁금해서 들여다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한테 자꾸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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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띄어쓰기를 하는 사람들」 · Frontier Note FIELD NOTE